우리 그냥, 지금 행복하면 안 되나요?

2018.07.10 20:39

Garam 조회 수:3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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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학교란 어떤 학생이든지간에 초라하고, 비참하고, 보잘것없고, 절망적으로 만들 수 있는 굉장한 곳이다. 말 그대로 숨 쉴 공기조차 경쟁해서 빼앗아야 할 듯한 그곳에서, 뭉개지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뭔가는 있어야 한다. 공부를 잘 하거나, 운동을 잘 하거나, 예쁘거나, 돈이 많거나, 부모님에게 파워가 있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잘나가는 애들과 친하거나. 중고등학교 시절, 그 모든 권력의 틈새를 절묘하게 비켜간 데다가 커뮤니케이션 스킬마저 부족했던 나는 학교 안의 복잡한 카스트에서 가장 최하층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름하여 ‘같이 밥 먹을 사람 없는 애’.

 

그것뿐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학교란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도 할 수 없는 장소라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도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에 한숨이 났다. 내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느낌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음악시간이었다. 그날따라 음악선생님이 날 유심히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시절 합창대회에서 목소리가 혼자 너무 크다고 담임교사에게 공개적으로 혼난 이후로는 음악시간이 무서웠다. 수업이 끝나고 음악선생님은 따로 날 불렀다. 그리고 물어보셨다. “너 목소리가 참 크다. 성악을 해 보지 않을래?”

 

혼자 먹는 점심밥은 서러웠지만 그 시간을 버티고 나면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즐거웠다. 보리밭, 남촌, 비목, 님이 오시는지, 목련화... 보리밭이 무슨 색깔인지, 남촌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정말 따스한지,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이 대체 뭔지는 모르겠어도 내 몸을 음률에 맡기는 것이 마냥 행복했다. 일 년이 되지 않아 전학을 가야 했고 매일 노래를 부를 수 있던 나날은 끝이 났다. 나는 ‘성악하는 왕따’에서 그냥 왕따로 다시 돌아갔다. 혼자 있을 때면 조용히 입을 달싹이며 가곡을 불렀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조금은 견딜 만했다.

 

기댈 수 있는 기억은 또 있었다. 중학교 여름방학이었다. 어느 청소년센터에서인가 여는 3박 4일짜리 캠프에 갔다. 동아리 활동을 한다기에 별 생각 없이 연극을 하겠다고 했다. 아주 짧은 대본이었고 대사는 열 마디도 되지 않았다. 무대는 그냥 교실 앞이었다. 그런데도 눈 앞에서 뭔가가 번쩍였다. “지금의 난, 진짜가 아니에요. 언젠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고 말 거예요!” 왜인지 지금도 그 대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가끔 집에 있을 때면 대사를 소리내어 읊고는 혼자 키득댔다. 그때 함께 연극을 했던 이들은 오랜 친구가 되었다. 서로의 졸업식에 가 주고 군대가는 길을 배웅했다.

 

그리고 소설과 시가 있었다. 어떤 것이든 좋았다. 무슨 이야기건 간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보다는 즐거웠다. 빨강머리 앤을 닳도록 읽었다. 사자왕 형제가 용을 부리는 독재자와 싸우기도 했다. 그리스 소녀는 위험에 빠진 사촌오빠를 다락방에 숨겨주었다. 몸이 점점 인형으로 변해가는 소녀가 오리 선원이 모는 배를 타고 항해했다. 시집을 읽고 일기장에 얼토당토 않은 시를 썼다. 권총과 음모와 복수가 등장하는 소설도 썼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그걸 읽고는 말했다. “너 알고 보니까 되게 재밌는 애구나.” 내 인생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조금은 숨쉴 만했다.

 

어둡고 기나긴 터널을 만신창이가 되어 빠져나온 지 나는 벌써 스무 해가 다 되어 가는데, 내가 탈출한 그 ‘학교’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나는 새삼 궁금하다. 왜 학교에서는 노래를 부르고, 연극을 하고, 시를 읊고, 소설을 쓰면서 밤하늘에 가득한 별을 보면 안 되는 것일까? 오로지 그것들만이 나를 살아있도록 지탱해주었고, 그럼으로써 내 영혼을 구원해주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학교는 그런 곳이 되면 안 되는 것일까? 

 

이번 1020 위토피아 페스티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그런 세상과 학교에 던지는 하나의 의문이다. 왜 안 될까? 왜 즐거우면 안 되고, 왜 신나면 안 되고, 왜 가만히 누워서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을 기다리면 안 되는 것일까. 왜 반딧불이 조용히 유영하는 숲 속에서 잠깐 동안 황홀해하면 안 되고, 왜 내가 쓴 시를 읊고 친구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가슴 깊이 차오르는 행복을 느끼면 안 되는 것일까.

 

나는,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노력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진심으로 보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행복이란 언젠가를 위해 적립해두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노력들이 쌓여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많은 일들을, ‘언젠가 나중에 때가 되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금 바로 하고 싶다.
 

 

 

- 김가람 (내일학교 자람도우미)